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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걸해골 (乞骸骨) 뜻 유래

by 티오피스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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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해골 뜻

乞(빌 걸)

骸(뼈 해)

骨(뼈 골)

직역하면 해골을 구걸한다 라는 뜻입니다.

늙은 신하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원한다는 의미로 쓰는 고사성어 입니다.

 

옛날에는 관직에 오른 신하는 임금에게 모든것을 바친 것이었고, 요즘처럼 정년퇴직이 정해지지 않은 말그대로 평생직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직을 원하거나 은퇴하고자 할 때 '뼈는 돌려주세요~' 라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걸해골 (乞骸骨) 뜻 유래
사직서 제출

 

걸해골 유래 

옛날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의 재상이었던 범증이 왕이었던 항우에게 한 말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는 초한지라는 소설과 역사서등으로 유명합니다. 장기판에 나오는 한자가 초나라(빨강)와 한나라(파랑) 입니다. 수많은 고사성어들이 유래되었는데 걸해골은 초나라의 범증이라는 신하의 일화에서 유래됩니다.

 

초한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

초한지에서 유래 된 고사성어, 사자성어, 단어, 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수천년전에 만들어진 말들 이지만 요즘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시험문제에도 자주 등장하죠. 단순히 성어와 뜻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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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왕은 항우, 한나라의 왕은 유방, 범증은 초나라의 재상이었습니다.

 

한고조(유방)가 초나라의 팽성을 공격 했다가 실패하여 항우에게 쫓겨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식량이 다 떨어진 유방은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 하게 됩니다.

걸해골
포위당했음

 

본래 항우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으로, 그의 신하인 범증에게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증은

안됩니다. 지금 한나라를 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하여, 항우는 마음을 바꾸고 유방을 공격하게 됩니다. 

 

유방이 있던 영양이 포위당하고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진평이라는 사람이 계책을 내게 됩니다.

 

진평은 지략이 뛰어난 인물로 본래 항우 밑에있던 신하였으나 유방에게 온 사람이었습니다.진평이 내 놓은 계책은 항우와 범증사이를 갈라놓는 이간계로, 초나라 군사속에 부하들을 보내서 

범증은 논공행상에 불만이 크고 항우몰래 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

라는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

 

항우는 그 소문을 믿고 범증에게 알리지 않고 강화사신을 유방에게 보냈습니다.

 

걸해골
거나한 상차림

 

진평은 화려한 잔칫상을 사신을 대접하며 사신에게 

범증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까?

하고 슬며시 물었다.

 

사신은 범증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니 기분이 언짢아져서

나는 초나라왕의 사신으로 왔소 

하고 퉁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진평은 깜짝놀라는 척하며

아니 초왕의 사신이라고? 범증의 사신이 아니었어?

라고 하고 잔칫상을 물리고 초라한 상으로 바꾸고 냉랭하게 대접하였습니다.

걸해골
조촐해진 잔칫상

 

푸대접을 받고 돌아간 사신은 이 일을 그대로 항우에게 전하였습니다.

이를 들은 항우는 화를내며 범증과 한나라가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 범증의 모든 지위와 권력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범증은 

이미 대세가 결정났으니 왕께서 스스로 마무리를 지으시오. 나는 걸해골하여 초야에 묻히겠소.

 

하고 초야로 돌아가는 길에 등의 종기가 악화되어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걸해골
군사회의

 

 

범증

범증은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04년)은 중국 초한전쟁 시기 초나라의 장군이자 참모로 역사가 사마천은 범증의 기계, 전술, 전략적 판단과 군사 능력은 당대 최고였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행적은 거의 없습니다.

범증은 70세가 넘어서야 항량(항우의 삼촌)을 만나 초나라의 모사로 활약하며 항우를 보필했습니다.
항우는 범증에게 항상 "아부(亞父)"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항우에게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왕이 되라고 권하여 패왕이 된 후, 범증은 그의 독선적인 행동과 의심을 경계하며 점차 소원해졌습니다.
한왕 유방이 휴전을 청할 때, 범증은 항우에게 절호의 기회이므로 유방을 제거할 것을 권했지만, 항우는 듣지 않았고, 결국 항우는 한왕 유방에게 패배하고 자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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